'취업성공패키지 1유형'에 참가하여
학원을 통해 수료 후 받은 수료증
취업성공패키지 1유형
국비지원으로 취득한 자격증들...
2019년 11월 18일 한통의 메일이 도착했었다. 그 내용은 다름 아닌 고용노동부에서 주관하는 '내일배움카드 우수사례 수기공전'에 참여하여 성공적으로 취·창업을 하였거나 이·전직한 성공사례들을 발굴하고 그 성과를 확산시켜 신규 진입자에게 국가 취업지원 사업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증진, 참여 확대를 위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이에 습작 연습도 하고 운 좋으면 입상해서 상금도 탈 수 있다는 생각에 공모전에 응모하였지만 본상은커녕 입상도 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다. 최소 입상은 할 줄 알았는데 ^.,^;; 글 솜씨가 없는 건지 입상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었는지는 몰라도 꼬박 하루 동안 열심히 글을 써서 지난 4년 동안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한 진솔한 이야기들을 완성하였다. 하여 그 아쉬움에 이렇게 그때 응모한 내용으로 글을 올려보려 한다.
부족하지만 나의 경험담을 통해 취업성공패키지 - 내일배움카드의 국가지원 사업에 대해 많은 분들이 참여하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9회말 2아웃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꿈을 위한 길)
You must come back home
나는 동생의 결혼식, 일과 타국 생활에 대한 슬럼프, 금전적 문제 등으로 2014년 4월 햇수로 3년간의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호주, 일본, 캐나다, 뉴질랜드를 거쳐 다시 호주로 타국 생활을 해온지도 햇수로 7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2011년 호주에 요리사로 영주권(기술 이민)을 취득하기 위해 마지막이란 각오로 호주 땅을 다시 밟게 되었지만 여전히 늘지 않던 영어실력과 타국 생활에서 오는 슬럼프는 나의 정신력을 나약하게 했으며 아울러 회의감마저 들게 했었다. 물론 일로서는 인정도 받았고 취업비자 제의도 받았지만 지독하게 찾아왔던 슬럼프는 나를 거의 그로기 상태에 이르게 만들어 놓았다. 결국 그 상태로 남은 학생비자를 취소하고 과감히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현실과 이상(理想)의 차이
그렇게 무엇도 이루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제일 먼저 부모님께 앞으로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진짜 나의 꿈을 위한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것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부모님께서 이해는 해주셨지만 내심 걱정을 많이 하셨던 것은 분명한 일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늘 내가 하는 일을 믿어주셨기에 비록 지금까지 결과로 보여 드린 것은 별로 없었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떳떳이 말할 수 있을 만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 꿈을 위해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도 있다.
그런 믿음으로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내가 갖고 있는 재산이라고는 통장 잔고에 40만 원이 전부였다. 물론 보험이랑 적금이 있었긴 했지만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은 고작 그것뿐이었다.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는 뒷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이 당시 나에게 처한 현실이었다.
그런 상황들 때문에 잠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처음 한국에 와서 부모님께 드렸던 말씀과 다짐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 일을 하지 않고서는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요리사의 경력과는 상관없이 설거지 알바, 파트타임 주방보조 일을 하며 점차 부모님의 도움 없이 생활이 가능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한국에 와서 내가 하려고 마음먹은 일들은 어느새 뒷전이 되어 가고 있었다.
결국 어떤 것도 제대로 몰두할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우선 돈부터 모이기로 하고 다시 요리사로 풀타임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해 틈틈이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것이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 않은 나의 어설픈 반항이었고 현실이었다.
도움의 손길은 늘 가까이에..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타협점을 찾아 조금씩 요리사의 일을 하고 있던 중 약 8년간 컴퓨터 조립 판매·수리 관련 사업을 해오고 있던 친형으로부터 사업을 그만두고 카페를 크게 운영하고 있는 형의 친구 분의 도움을 받아 카페 창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형의 친구이자 내 고등학교 1년 선배님이셨던 그분은 본래 화려한 경력의 바텐더 이셨다가 전직을 하여 바리스타가 되셨는데 열심히 노력한 결과 각종 세계 바리스타 시연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얻게 되면서 바리스타로 성공을 하셨다. 그런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던 형은 그 동기부여로 고용센터의 국비지원 직업훈련 제도인 '취업성공패키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일정 금액의 국가지원을 받아 바리스타 학원에 등록하였고 자격증 취득 후 취업을 하여 6개월간 실무 경험을 쌓은 후 창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형의 새로운 인생의 계획과 실천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 영향으로 약 7년간의 요리사 경력을 모두 접고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과감하게 하게 되었고 형과 고용센터 상담사님의 친절한 제도적인 도움을 받으며 그렇게 첫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하게 되었다.
다만 새로운 도전이라고는 했지만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본질적으로 요리사의 일과 동떨어진 일은 하고 싶지가 않아 선택한 직업이 바로 '제빵사'였다. 그렇게 형과 고용센터 상담사님의 도움으로 형과 같은 창업의 수순을 밟게 되었고 직업훈련과정의 학원을 등록하여 다니며 자격증을 취득하고 짧게라도 실무 경험을 해본 뒤 창업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혀 계획하였다.
학원의 과정별 목표 달성하기
'취업성공패키지' 국비지원 사업의 진행에 따라 1단계 IPA(취업지원계획표)를 수립하고 2단계에 사전 계획에 따라 '제과제빵 기능사 자격증 취득' 과정이 있는 거주지역 내 학원을 등록하고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수강에 임했다. 우선 나는 요리사로 일하면서 한식, 양식, 일식의 조리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였기 때문에 국가 기술 자격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서 학원 수강 전 미리 필기는 합격해 놓은 상태였고 실기 과정도 요리 경력 때문이지 그리 어렵지 않게 배울 수가 있었다.
그런 나의 모습에 학원에서는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강사 제의도 해주셨다. 사실 10년 전 자비로 한식, 양식, 일식을 배울 때 다니던 학원을 다시 다니게 된 것이었는데 10년 전에도 역시 강사 제의를 받은 적이 있어서 이런 상황이 기분은 좋았지만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니어서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게 매일 하루 5시간씩 주 5일 총 39일간 제과제빵 자격증 취득과정을 잘 수료하였고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다. 1차 학원 수료 후 2차로 서울 왕십리에서 '플라워 케이크 자격증 취득'과정까지 수료함으로써 '내일배움카드'를 알차게 사용하였고 3단계 취업도 어렵지 않게 바로 할 수가 있었다.
세상에 쉬운 일도 만만한 일도 없다.
일련의 과정과 노력을 통해 취업하게 된 곳은 작았지만 제빵 기능장이 운영하는 동네 유명 빵집이었고 월급은 요리사로 일할 때 보다 훨씬 적었지만 그저 배운다는 생각으로 그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일하였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너무 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평균 12시간 근무를 하며 쉬는 시간과 아침·저녁 식사 시간을 다 포함해도 1시간이 채 되지 않았을뿐더러 식대도 자신이 부담해야 했으며 바쁜 연말에는 12시간 이상 근무하는 날도 많았지만 그에 대한 초과 근무수당도 없었다.
그런 어이없는 상황에서 일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냥 조용히 그만두고 싶어 사장님께 개인의 사정 때문에 일을 그만둔다고 말씀을 드리니 퇴사 3개월 전부터 퇴사를 한다 미리 말했어야 한다는 둥 나이가 많았지만 요리 경력 때문에 뽑아 줬다는 둥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늘어놓자 너무 기분이 나빠 사전에 알아봤던 '근로기준법'을 일일이 나열하며 따졌고 그런 모습에 당황을 하셨는지 "알았다""며 나의 퇴사에 대한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 일 끝나고 집으로 가는 중에 사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미안했다. 그만둘 때까지 출근은 해라"라며 사과의 말을 하셨고 그 말속에 담긴 진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과의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노동부에 신고를 할 것 같았나 보다 내심 노심초사한 마음이 헤아려졌다.
물론 당연히 나는 그런 일로 누구를 일부러 힘들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진심 어떠한 논쟁도 없이 그저 조용히 나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니 내심 씁쓸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제빵 기능장에 TV 매스컴도 타고 전문대학교 시간 강사로도 재직하시는 분이 이렇게 '근로기준법'을 준 수 하지 않는다는 것이 치근 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화가 나기도 했다.
그 이후로 내가 그만 두기 전까지 사장님은 나를 일부러 피하는 듯했고 나도 크게 신경 쓰고 싶지 않고 그만두는 날까지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남은 날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끝내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장님을 보며 정말 너무 하다는 생각만 했었다.
'취업성공 패키지' 프로그램으로 3단계 취업을 하게 되면 근속에 따라 1, 3, 6개월에 '취업성공수당'을 지급해 주었는데 수당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재직 증명서'와 '근로계약서'가 필요해 입사하고 바로 그것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결국 마지막 날 그것도 간신히 받게 되었다. 면접 때, 입사하고 바로, 그리고 퇴사한다고 말한 날도 분명히 간곡히 서류를 준비해달라고 했건만 마지막 날까지 바빠서 준비를 못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렇게 첫 단추를 잘 끼우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나의 창업에 대한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한 3개월간 준비를 해서 친형이 창업한 카페 한편에 베이커리 라인을 구축하고 동업 아닌 동업을 하게 되었다. 제빵사로 실력이 밑천 한 내가 일적인 센스가 있다 하여 그것만 믿고 사업자를 내어 창업을 하기에는 당시 위험 리스크가 많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본금이 충분치가 않았다.
그런 나의 사정과 형의 카페의 매출 시너지를 위해 형과 함께 카페를 키워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실무 경력이 부족하다 보니 빵과 쿠키, 케이크를 만드는데 한계가 있었고 또한 혼자서 일하다 보니 생산량도 많지가 않아 판매단가를 내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6개월간 동네 빵집 컨셉으로 운영하였지만 현실적인 문제점과 경영난에 부딪혀 끝내 운영을 더 하지 못하고 형의 가게에서 나오게 된다.
비록 정확히 셈하여 계산해 보면 많은 적자는 없었지만 6개월간의 순 수익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고 베이커리 라인을 구축하기 위한 기구와 기계, 설비 구축으로 들어간 돈은 거의 절반 정도만 회수하는 정도였다.
단 한번의 창업과 꿈을 위해
2014년 모든 것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첫 도전의 쓴맛을 제대로 보았지만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재도전을 위해 본업으로 돌아와 일을 다시 시작했고 첫 '취업성공패키지' 참여 이후 약 1년 6개월 만에 재참여를 하게 되었다. 형이 카페를 운영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가진 요리·제빵사의 경험과 더불어 바리스타로서 나를 업그레이드시킨다면 카페를 제대로 리뉴얼하여 형과 함께 카페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다시 계획을 세워 두 번째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해 2017년 '바리스타'와 '조주 기능사(칵테일)' 과정을 수료하였고 자격증까지 취득하였지만 안타깝게도 형 역시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게 폐업을 결심함으로써 나의 계획은 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당시 형의 카페에 다시 들어갈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본금이 충분치 않아 창업은 엄두를 내지 못했고 또 그렇게 본업으로 돌아와 일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여러 상황들로 인해 나의 꿈은 더 멀어져만 가고 있었다.
누군가 "그냥 요리사로 일하면 안 되냐?"라고 말할지도 모르나 당시는 더 이상 요리사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요리사가 되었고 한때 요리사가 천직이라 믿고 끝까지 가고 싶었지만 나의 근면, 성실함과는 별개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나를 지치게 하여 지독한 슬럼프에 빠지게 하였고 그렇게 슬럼프의 골이 깊어질수록 내 안에 꿈틀거리던 나의 진정한 꿈은 더 간절하기만 했다.
그럼 나의 꿈은 무엇인가? 나는 언제가 되었던 작가의 길을 갈 것이며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내 모든 경험을 통해 꼭 한 번은 나의 이름을 내걸고 작은 식당을 운영해보고 싶은 소망도 갖고 있다. 그런 생각들로 2019년 5월 두 번째 '취업성공패키지' 재참여 이후 2년 6개월 만에 또다시 고용노동부의 제도적 도움과 혜택을 받게 되었고 나는 현재 창업을 위한 경험치를 쌓기 위해 일식 조리사의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2015년 첫 '취업성공패키지' 참여 이후 지금까지 세 번의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하였고 제과제빵 기능사, 플라워 케이크 스탠다드·마스터, 조주 기능사, 바리스타 2급, 일식 회·초밥 전문가 과정을 통해 3개의 민간 자격증과 3개의 국가기술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것도 100%의 출석률로 과정을 성실히 이수하였다. 그리고 길게는 서울까지 왕복 4시간이 넘게 오가며 정말 이를 악물고 다녔기에 좋은 성과를 얻을 수가 있었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가 살기가 힘들어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다고들 하며 그런 이유로 한국을 떠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조금만 제대로 들여다보면 그것은 어느 곳에서든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점들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에 비해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내가 겪어낸 인생의 경험으로 소리 높여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누군가 나라가 국민을 위해 해 준 것이 없다 말들 하지만 안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민의 행복과 안정된 삶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지원은 사실 너무나 많이 있다. 곧 그것이 개인의 삶과 미래를 위한 도움의 손길이며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나라와 정부의 노력일 것이다.
결국 그것을 찾고, 이겨내고, 결과로 증명하는 일은 본인 스스로의 몫이라는 것을 명심하며 간절히 바라건대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상 2019년 '내일배움카드 우수사례 수기공모전'의 응모 분량 조건으로 A4 3장으로 쓴 내용이었다. 자세한 '취업성공패키지' 참여에 대한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 있을 것이며 취·창업을 준비 중인 모든 분들께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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